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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이른바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돼 형이 집행된 고(故) 강을성 씨가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형 집행 이후 50년 만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강민호)는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강을성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 요지 공시를 명했다.(2026.1. 19 선고 2022재고합3)
재판부는 “영장 없는 연행과 불법 구금, 강압 수사로 확보된 진술은 임의성이 의심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를 토대로 한 2차 증거 역시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75년 사형 선고, 1976년 집행…유족 재심 청구로 다시 법정에
판결문에 따르면 강 씨는 1974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975년 2월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며 형이 확정됐고, 1976년 9월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유족들은 2022년 11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25년 2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재심 절차에서 증거능력부터 다시 따져 판단에 나섰다.
재판부는 수사 초기부터 절차적 위법이 중대했다고 봤다. 강 씨는 1974년 10월 2일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됐지만, 구속영장은 19일이 지난 뒤에야 발부·집행됐다.
재판부는 “동행 거부 고지나 자유로운 이탈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연행 시점부터 영장 집행 전까지는 불법 체포·감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기간 중 작성된 피고인 신문조서, 자필 진술서, 관련자 진술 등 핵심 증거 대부분의 증거능력이 부정됐다.
또 “불법 구금에서 비롯된 심리적 압박이 이후 법정 진술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재심 개시 전 법정에서 이뤄진 불리한 진술 역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은 증거만으로 공소사실 입증 부족”…검찰도 무죄 구형
재판부는 “증거능력 없는 진술을 배제하고 남은 자료만으로는 간첩·대적군기누설 등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하기 어렵다”며 형사소송법상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검찰 역시 결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절차적 진실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체적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민호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무죄를 선고하는 마음이 무겁다”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고, 너무 늦어버렸다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사법부가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앞에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께 깊은 사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군사정권 시기 공안 사건에서 반복돼 온 불법 구금, 강압 수사, 진술 임의성 문제를 재심 법원이 정면으로 인정한 사례로, ‘실체적 진실’ 못지않게 ‘절차적 진실’과 인권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판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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