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통신비밀보호법과 의료법의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분출됐다. 공익 목적의 녹음과 증거 확보 행위까지 형사 처벌하는 현행 법 체계가 ‘피해자와 조력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7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의료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서영교 의원과 시민단체·법조계가 공동 주최했으며, 의료사고 피해자와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 위원장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나선 법조인이 오히려 처벌받는 모순적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며 “통신비밀보호법과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정의의 공백을 반드시 메우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특히 수술실 CCTV 제도의 실효성 부족과 통신비밀보호법의 과도한 처벌 규정이 핵심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수술실 CCTV 설치율은 99%를 넘지만 실제 촬영은 환자 신청이 있어야만 가능해 활용률은 4%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밀폐된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대리수술이나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환자와 가족들이 선택한 녹음 행위가 오히려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며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역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공익적 목적의 녹음까지 일률적으로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규정은 시대 변화와 맞지 않는다”며 “공익 목적의 경우 위법성을 면제하는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로 대리수술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녹음된 자료를 공개한 환자와 이를 도운 변호사가 형사 처벌을 받은 사건이 언급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이들은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진실을 밝힌 사람이 처벌받는 구조는 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구체적인 입법 방향도 제시됐다. 통신비밀보호법의 경우 공익적 목적의 녹음에 대한 예외 조항을 명문화하고, 징역형 일변도의 처벌 규정을 벌금형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수술실 CCTV 촬영 방식을 ‘신청주의’에서 ‘거부하지 않으면 촬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영상 보관 기간을 현행 30일에서 대폭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마취 상태의 환자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그 순간만큼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계기로 10년 넘게 국회에 계류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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