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집유’ 감형..예술계 성폭력 판결, ‘절차 중심’ vs ‘구조적 위력’ 논란 지속광주 연극계를 뒤흔든 ‘미투’ 사건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예술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법 판단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진환)는 23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광주 모 극단 대표 A 씨의 항소심에서 원심형인 징역 3년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200시간 사회봉사와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및 5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취업 금지를 함께 명령했다.
A 씨와 함께 기소된 극단 연출가·배우 2명은 무죄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A 씨는 지난 2012년부터 수년간 극단 대표이자 연극 연출가라는 직위를 이용해 여성 배우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이 사건 발생 10년 후에 이뤄진 점이 일반적이지 않아 인과관계 인정에 신중해야 한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친고죄(고소 기간 1년) 미준수를 이유로 공소기각을 선언했다. 다만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다.
선고 직후 법정 안팎은 분노로 들끓었다. 방청석에서는 “이게 재판이냐”, “사법 정의가 무너졌다”는 고성이 터져 나왔고, 광주 연극계 성폭력 대책위원회는 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위계·위력이 작동하는 예술 현장의 성폭력을 외면하고 가해자 손을 들어준 판결”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피해자들은 “피눈물이 담긴 일기와 메모, 일관된 진술을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지적하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 판결은 예술계(특히 연극·공연 분야)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근 판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무용계·미술계 등 문화예술 현장에서 권력형 성범죄 폭로가 잇따랐지만, 법원은 ‘증거 중심·절차 중심’ 판단을 고수하며 피해자 측의 ‘구조적 폭력’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간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종합해 보면, 예술계 성폭력 사건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1심에서는 비교적 엄중한 실형이 선고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항소심·상고심에서는 증거 부족·시간 경과·친고죄 적용 등을 이유로 감형 또는 무죄·공소기각이 잦아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8년 미투 후 첫 실형이 나왔던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사건(연희단거리패)에서도 극단 단원들에 대한 상습 성폭력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됐다. 당시 법원은 “위력을 이용한 반복적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증거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엄격히 검증했다.
또 오징어게임 흥행으로 재조명 받았던 연극계 원로배우 오영수 사건 역시 지난 2025년 수원지법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판결했다. 법원은 “예술 현장의 친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위력 행사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예술계 특유의 ‘스승-제자’ ‘연출가-배우’ 위계 구조를 ‘개인적 갈등’으로 해석한 대표적 사례로, 연극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판결에 대해 매체 법률 자문단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일부 친고죄가 폐지됐지만, 단순 강제추행 등은 여전히 1년 내 고소 요건이 남아 있어 오래된 예술계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2023~2025년 사이 문화예술계 성폭력 형사사건 400여 건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1심 유죄율은 70%대로 높았으나 항소심에서 감형 비율이 40%를 넘었다. 특히 5~10년 이상 경과한 ‘오래된 미투’ 사건에서는 친고죄 적용이나 PTSD 등 정신적 피해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워 공소기각 또는 집행유예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닷컴 윤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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