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략은 언뜻 보아 수동적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계략은 동적이다. 전쟁사의 여러 예들은 이 계략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계략임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실전을 통하여 이 계략이 활용된 가장 이른 전례는 기원전 707년에 있었다. 주(周) 천자 환왕(桓王)의 군대와 제후국 정나라 군대가 수갈(繻葛-지금의 하남성 장갈현 동북)에서 전투를 벌였다.
춘추시대에 들어오면서 주 천자의 통치력이 날로 쇠약해져 제후들은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정나라 장공(莊公)은 자루 속에서 송곳이 삐져나오듯 중원에서 유별나게 주 천자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기원전 707년, 주 환왕은 몸소 진(陳)‧채(蔡)‧괵(虢)‧위(衛) 네 나라의연합군을 이끌고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
환왕은 전통적인 전법에 따라 군대를 좌‧중‧우 3군으로 나누어 ‘품(品)’자 형태로 배열하고 중군을 앞에 내세웠다. 정나라 군대도 3군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정은 전통적인 전법을 바꾸어 좌‧우군을 주력으로 삼고 중군은 뒤에 처지게 했다.
주 천자의 좌군은 주로 진나라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군의 정신력도 굳세지 못하였고 전투력도 약해서 연합군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정군의 자항(子亢)이 이점을 간파하여 먼저 진나라 군대를 치면 필시 도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채‧위의 역량도 약해질 것이니, 그때 주력을 집중시켜 주 천자의 군대를 공격하면 필승일 것이라는 전략을 건의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과연 좌군을 구성하고 있는 진나라 군대는 급속도로 무너져 혼란에 빠졌고, 채와 위의 군대도 황망히 패주했다. 이에 정군은 삼군을 집중하여 주 천자의 군대를 공격, 대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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