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劉備' 인재를 얻고 잘 활용해 대업을 성취하다

[다시 읽고 새로 쓰는 고전소통]人物論(07)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황제가 되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4/22 [18:16]

'유비 劉備' 인재를 얻고 잘 활용해 대업을 성취하다

[다시 읽고 새로 쓰는 고전소통]人物論(07)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황제가 되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0/04/22 [18:16]

유비(劉備.-161~223, 재위221~223)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남녀노소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제갈량(諸葛亮) 한 사람만을 중용했다면 절대로 대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한평생 수많은 인재를 만났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함으로써 정치를 안정시키고 제업(帝業)을 완성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창출했다. 이 점은 그가 성도로 들어간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건안(建安) 19년에서 24년까지(214~219) 5년 동안 유비는 유장(劉璋)을 물리치고 성도를 점령했으며 한중을 손에 넣음으로써 눈부신 무공으로 서남 지역의 세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까지는 아직 무수한 난관이 남아 있었다.

 

 

 

이치는 매우 간단했다. 정적 집단이 와해 되긴 했으나 유장은 한 왕실의 종실이었고, 여러 해에 걸쳐 촉(蜀)을 경영하면서 든든한 관계망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그는 유비를 촉에 받아들이고, 병력과 함께 군량을 지원하는 등 유비에게 마음을 다했기 때문에 유비로서는 당분간 인심을 수습하기 어려웠다.

 

인심을 얻기 위해서는 유장의 옛 부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유비는 유장의 수하 가운데 재능 있는 사람들을 중용함으로써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

 

유장의 주변 인물들은 숫자가 많은 데다가 성분이 매우 복잡했다. 기풍이 문란하고 부패 한데다가 관리들도 대부분 무능했지만 그렇다고 인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유비의 이해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장의 부하였던 법정(法正)이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 유공께서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인심을 얻으셔야 합니다. 원로인 허정(許靖)은 채옹(蔡邕)이나 공융(孔融)과 같은 연배로서 일찍이 유장 밑에서 촉군 태수를 지냈던 인물입니다.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여 중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명망은 천하에 두루 알려져 있습니다. 유공께서 그를 예로써 대우하시지 않는다면 천하의 여러 사람들이 유공을 어진 선비를 몰라보는 사람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법정의 시의적절한 지적 덕분에 유비는 자신의 중요한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곧이어 허정은 유비의 장사(長史)가 되었고, 오래지 않아 사도(司徒)로 승진했다. 그는 자질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데다가 명망이 대단했기 때문에 유비에게 기용된 후에 많은 사람에게 폭넓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덕분에 촉 사람들은 유비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되었을 뿐 아니라 화흠(華歆)이나 왕랑(王朗)처럼 조조 정권에 들어간 일부 유명 인사들도 유비 정권을 우습게 보지 못하게 되었다.

 

유장의 수하에 있던 이엄(李嚴)은 상당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도령(都令)과 호군(護軍) 등의 무관직을 역임하면서 위세와 명망을 크게 떨쳤다. 유비가 유장을 공격했을 때 그는 전선으로 나와 유비에게 투항했고 유비는 그를 신장군(神將軍)으로 모셨다.

 

곧이어 흥업장군(興業將軍)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유비가 그를 크게 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품행이 바르지 못해 물의를 일으킨 것은 나중 일이고, 당시로는 이엄을 임용한 것이 촉의 인심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비로서는 기존의 통치 집단의 핵심 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오의(吳懿)와 비관(費觀)은 유장과 사돈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오의는 유장 집단의 핵심 인물로, 영향력이 매우 컸다. 또 그의 누이는 유장의 형 유모(劉瑁)의 아내였다. 이처럼 오의와 유장 사이에는 친인척 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비는 대규모 봉상(封賞)을 시행하고 유장 시기에 갖고 있던 중요 관작들을 환원해주었다. 특히 사돈 관계를 이용하기 위해 유모가 병사하자 과부가 된 오의의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결과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파(劉巴)의 중용은 상당히 극적인 면을 보인다. 유파는 줄곧 격렬하게 유비에 대항해왔고 유비와의 협력을 결사반대했던 인물이다. 유파는 형주 사람으로 조조의 거대병력이 남하하여 형주를 점령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전부 유비를 따라 남방으로 도피했으나 그만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자 형주의 6군은 다시 유비의 손으로 넘어갔고 유파는 형주에 구금되었다. 이때 제갈량이 그에게 편지를 써서 유비에게 귀순할 것을 권유했으나 유파는 이를 거절하고 멀리 교지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서 유장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유파가 막 사천에 도착하자마자 유장이 멸망했고 유비는 유파를 보호하기 위해 성도를 포위하면서 특별히 유파를 해치는 자는 삼족을 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유파를 찾은 유비는 몹시 기뻐했고 유파는 유비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여 결국 그에게 귀순하게 되었다.

 

유비는 그를 즉시 장군서조연(將軍西曺掾)에 봉하고 몇 년 후에는 다시 상서령으로 임명했다. 일설에 의하면 불같은 성격의 장비도 유파를 대단히 존경하여 그가 여러 차례 자신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혈기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는 유파의 청렴한 성격과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법정의 기용 역시 의미심장한 일면을 갖고 있다. 법정은 명령을 받들어 유비를 촉으로 맞아들인 인물로, 유비가 유장을 격파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공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지모와 계략이 풍부하여 나중에 유비의 집단에서 제갈량에 버금가는 인물로 자리매김이 되기도 했다. 그가 유비에게 미친 영향도 커서 제갈량이 유비의 오나라 정벌을 저지할 수 없게 되자 탄식하여 말했다.


“법정이 있었다면 반드시 주공을 말릴 수 있었을 텐데‧‧‧‧‧‧,”

 

유비는 성도를 공격한 후에 법정을 촉군 태수 겸 양무장군으로 봉하여 밖으로는 도성과 그 밖에 지역을 관장하고 안으로는 모사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나 법정에게는 보복 공격을 할 때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을 무고하게 살해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상자고(狀子告)가 유비에게로 왔을 때 유비는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법정의 직책을 빼앗아 그에게 주었다가는 오른팔을 잃게 될 것이고 그를 징계했다가는 그의 능력을 사장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 제갈량이 말했다.

 

“지금 북쪽에는 조조가 있고 동쪽에는 손권이 있는데, 손부인(孫婦人.-유비의 계비(繼妃) 손권의 외동 누이)은 또 주공의 신변에 있습니다. 주공께서 고려하실 문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촉군의  수많은 일을 법정이 잘 처리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그를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비의 용인술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묘미를 발휘했다. 그는 먼저 전체적인 형세를 접어두고 법정을 자신의 신변으로 끌어들여 상서령이라는 직책을 맡김으로써 그의 능력을 맘껏 발휘케 하면서도 보복 공격을 못 하게 했다.

 

유비의 용인술은 능력 있는 인사들을 중용하는 데에서 그 성공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진복(秦宓)은 사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재주와 학문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청렴하고 고상함을 숭상하여 여러 군주로부터 관직을 제의받았지만, 매번 고사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소문을 들은 유비가 광한태수(廣韓太守)를 보내 진복의 집에 술과 음식을 선물하면서 가르침을 구하자 그제야 유비의 뜻을 받아들여 종사제주(從事祭酒)가 되었다.

 

한번은 오나라의 재자(才子) 장온(張溫)이 촉에 사자로 가서는 몹시 거만한 태도로 촉의 학사들과 학문을 겨루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에 진복이 나서서 장온의 물음에 『시경』의 전례와 고사를 들면서 일일이 응대하다가 하늘의 성씨를 묻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늘에도 성씨가 있습니까?”
“있지요. 바로 유(劉)씨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천자의 성이 유씨이니, 하늘도 당연히 유씨겠지요?”

 

진복의 거침없는 대답에 장온의 예기가 꺾였고 유씨 정권은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하늘의 성은 유씨’라는 한마디는 촉나라 전체를 기쁨에 들뜨게 만들어 장차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는 데에도 합리적인 해석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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