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背水之陳’으로 적을 섬멸했던 개국공신 그의 말로는 (上)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人物論(43) 여인의 칼날에 원혼이 된 일대명장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1/06 [03:02]

'한신'‘背水之陳’으로 적을 섬멸했던 개국공신 그의 말로는 (上)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人物論(43) 여인의 칼날에 원혼이 된 일대명장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1/06 [03:02]

한신(韓信)은 남몰래 고통을 참는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일화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신은 회양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농사도 짓지 않고 상업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하다 보니 먹고 입는 것이 항상 부족했고 하찮은 관직이라도 지내보려 했으나 쓸만한 재주도 없어 자리를 얻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남에게 빌어먹어야 했다. 그는 한동안 정장(停長.-한대 행정구역의 하나인 정(停)의 우두머리로 지금의 면장이나 동장에 해당한다)과 사이가 좋아 걸핏하면 정장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되다 보니 정장의 아내가 언짢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정장의 아내는 일부러 식사 시간을 앞당겨 한신이 찾아갔을 때는 이미 설거지까지 끝낸 뒤였다. 한신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는 정장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허기에 지친 그는 회양성 밑에 있는 강에서, 낚시질을 해봤으나 그마저도 운이 없어 빈속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때 마침 물가로 빨래하러 나온 노부인이 한신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는 점심때마다 자신의 밥을 그에게 나눠주었다. 한신은 배고 품을 참기 어려워 사양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먹었고 이런 식으로 한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신은 감개에 젖어 노부인에게 말했다.

 

“언젠가 제가 출세하게 되면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그러자 노부인이 몹시 화를 내며 한신을 나무랐다.

 

“대장부가 스스로 살길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기가 죽어서 되겠소? 키가 7척에 이목구비가 준수한 것으로 보아 왕손이나 공자의 상인데 배를 곯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밥 몇 끼를 대접한 것뿐인데 내가 무슨 보답을 바란다고 그러우!”

 

노부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빨랫감을 챙겨 자리를 떴다.

 

한신은 배고픔을 해결한 은혜를 입고 감격해 마지않았지만 이를 갚을 기회가 없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 정도로 가난에 몰리자 한신은 가보로 내려오는 보검을 팔기를 결심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보검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보검을 허리에 차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에 우연히 백정 하나를 만났다. 백정은 한신을 골려줄 생각으로 조롱 섞인 어투로 말했다.

 

“자네는 덩치는 큰데 아주 연약해 보이는군! 배짱이 있다면 그 칼로 나를 찔러보게, 날 찌르지 못하면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통과해야 하네.”

 

백정은 이렇게 말하면서 팔짱을 낀 채 거리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한신은 백정을 한 번 훑어보고는 곧장 땅바닥에 엎드려 기어가기 시작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겁쟁이라고 놀렸지만, 한신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백정을 찌를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큰 뜻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 소인배와 사소한 시비를 벌이고 싶지 않아 스스로 치욕을 감수한 것뿐이었다. 나중에 한신은 유방을 수행하면서 전쟁에서 무수한 공을 세워 회음후(淮陰侯)에 봉해졌다. 마침내 출세하게 된 그는 빨래터에서 만난 노부인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했지만 백정을 혼내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백정을 찾아 하급 군관으로 임명했다.

 

기원전 203년 11월, 한신은 용차(龍且)의 목을 베고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주살함으로써 제나라를 평정했다. 이때 그는 이미 수십만의 병력을 보유하여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당시엔 한신이 초에 투항하면 한이 망하고, 한을 도우면 초가 망한다고 할 정도로 팽팽하게 삼국이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때 초한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신이 항우가 세운 제나라를 격파했을 때 제의 제후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지를 지키면서 일부는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에게 투항했고 일부는 유방을 내치고 항우를 따랐으며 일부는 스스로 칭제하여 무상한 공방을 거듭했다. 이때 한신은 다른 사람의 권고에 따라 유방에게 사자를 보내 자신을 제나라 땅의 임시 군왕으로 봉해줄 것을, 요구했다. 마침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던 유방은 한신이 병력을 지원해줄 생각은커녕 이를 기회로 제나라 땅을 차지하려 든다고 생각하고 몹시 분개하며 사자에게 호통을 치려고 했지만, 장량이 황급히 나서서 유방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유방에게 말했다.

 

“지금은 한신의 사자를 나무라서도 안 되고 한신을 공격해서도 안 됩니다. 한신이 폐하를 도와야만 초를 멸망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한신이 폐하를 배반하고 초왕을 돕는다면 폐하께서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한신이 사자를 보낸 것은 폐하의 태도를 살피기 위한 것이니 흔쾌히 그를 제왕으로 봉하셔서 제나라 땅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일은 초가 망한 다음에 다시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유방은 장량의 말을 받아들여 한신의 사자를 향해 말했다.

 

“대장부가 임시로 왕이 될 수야 있나? 정식 왕으로 책봉하겠네!”

 

그리하여 이듬해 2월, 유방은 장량에게 옥새를 갖고 제나라 지역으로 가서 한신을 왕으로 봉하게 했다. 유방의 조치는 과연 실효를 거두었다. 본래 그를 배반하고 독립할까 망설이던 한신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평온해졌다. 얼마 후, 초왕 항우가 사신 무섭(武涉)을 보내 초나라로 귀순할 것을 권했지만 한신은 거절했다.

 

그러나 천하의 형세를 꿰뚫어볼 줄 알았던 책사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독립을 권유했다.

 

“처음에 난이 일어나고 군웅들이 사방에서 봉기한 것은 주로 진나라를 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뒤에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전쟁을 벌여 뭇 백성들이 곤란에 처해있습니다. 팽성에서 군사를 일으킨 항우는 남북에서 전쟁을 벌이고 형양까지 육박하여 천하에 그 위세를 떨쳤습니다. 지금은 광무에 발이 묶여 여러 해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유방은 수십만 대군으로 공락을 점령하고 산과 강에 의지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만 거듭하고 있지요. 제가 천하의 대세를 바라보건대 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전쟁을 멈출 길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기회에 초나라, 한나라 사이에서 그 두 나라를 번갈아 도우십시오. 그러면 두 나라의 운명은 장군의 손안에 있게 됩니다. 만약 제 계략에 따르신다면 두 나라와 함께 천하를 삼분해 정립(鼎立)의 형세를 이루고, 조용히 시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장군은 큰 인재이십니다. 강한 제나라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10만 대군으로 연나라, 조나라 지역을 차지하고 서쪽으로 진출한 장군에게 천하의 어느 누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훗날 천하를 갈라 제후들에게 나눠주면 그들이 다 감복하고 앞다투어 장군께 엎드릴 테니 이것이 곧 폐왕의 업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주신 것을 받지 않으면 천명을 어기는 것이라 거꾸로 벌을 받게 되고 때가 왔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그때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라 화를 입는다고 합니다. 이점을 필히 숙고하시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한신은 그의 말을 오랫동안 음미하고서 입을 열었다.

 

“한나라 왕이 날 이토록 잘 대해주는데 어떻게 내 잇속만 차리고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나?”

 

괴통은 그가 충성과 은혜에 얽매여 있음을 알고 다시 말했다.

 

“월(越)나라 대부 문중(文仲)은 망한 월나라를 보존하고 구천(句踐)을 도와 큰 공을 세웠지만, 도리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실로 바뀌지 않은 진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장군의 용맹이 제왕을 놀라게 하면 흔히 위험을 자초하며, 공이 천하를 뒤엎으면 흔히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금 장군은 초나라에 협력해도 믿음을 얻지 못하고 한나라에 협력해도 두려움을 살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한신은 그의 말이 합리적이라고 느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괴통의 말을 끊고 말했다.

 

“선생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내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소.”

 

괴통은 한신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떴다. 괴통이 돌아간 후, 한신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전에 힝우를 위해 일한 적이 있었지만, 벼슬도 낭중(郎中)에 머물렀고 계책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라에 투신해서는 유방에게 장군 직위를 얻어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한나라 왕은 내게 온갖 친절을 다 베풀었고 이번에는 날 제나라 왕으로 책봉해 주었다. 내가 만약 이런 은덕을 저버린다면 불길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위표(魏豹)를 사로잡고 제, 연, 조나라를 평정해준 나를 그가 어찌 내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결국 괴통의 제안을 없었던 것으로 하였다.

 

본래 한신이야말로 포부가 큰 인물이라고 여겼던 괴통은 조용히 며칠을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자 그는 다시 한신을 찾아가 말했다.

 

“장군께서는 속히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미 한나라를 배신하지 않기로, 결심한 한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말씀일랑은 다시 꺼내지 마시오. 나의 공이 이토록 크고 충성으로 왕을 대하는데 왜 그가 날 저버리겠소?”

 

괴통은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괴통은 한신의 곁에 더 머물다가 혹시 화를 당할까 두려워 정신병을 가장하고 그곳을 떠난 뒤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나라 10년(BC 197), 대 지역의 국상(國相) 진희(陳狶)가 모반하여 스스로를 대왕(代王)이라고 칭했다. 한 고조 유방은 직접 그를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방은 출병에 앞서 나라 안의 일은 여후(呂后)에게 맡기고, 바깥의 일은 소하에게 맡겼다. 유방이 떠나고 얼마 후, 여후에게 회음후 한신이 진희와 내통하고 있다는 밀고가 들어왔다. 밀고에 따르면 한신과 진희가 어둠을 틈타 황궁을 포위하고 태자를 습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때 한신은 왕에서 제후로 강등된 일로 인해 유방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점차 반역의 욕구가 짙어지고 있었다. 한나라 7년(BC 200), 유방은 척희(戚姬)의 아들 여의(如意)를 대나라 왕으로 세우고, 그가 어린 까닭에 진희를 재상으로 보내 보좌하도록 했다. 이별을 앞두고 한신이 진희의 손을 잡아당기며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자네와 내가 좋은 친구로 지낸 지 꽤 여러 해가 되었네, 지금 자네에게 할 말이 있는데 들어보려는가?”

“말씀하십시오. 장군”

 

“자네는 명을 받아 대나라 땅에 가게 되었네, 그곳은 강한 병사와 튼튼한 말이 많은 곳이지. 게다가 자네는 대왕의 총애가 두터운 신하이니, 큰일을 도모할 기회가 아닐 수 없네. 만약 누군가 자네를 반역자로 밀고해도 대왕은 쉽게 믿지 않을 걸세. 아마 두 번 세 번 밀고가 들어온 다음에야 군대를 움직이겠지. 그때 내가 도읍인 이곳에서 일을 벌여 자네에게 호응하면 천하를 얻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세.”

 

일찍이 한신이 천하의 귀재임을 알고 있던 진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진희가 군대를 일으키고 유방이 원정을 떠난 배후에는 이런 내력이 숨어있었다. 이때 도읍에 있던 한신은 병을 핑계로 집에 틀어박혔다. 그는 한편으로는 가신들과 함께 궁궐을 습격하여 태자와 여후 등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웠다.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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