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영대갈(畜盈待竭) 넘침으로 고갈됨을 기다린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2/15 [01:21]

축영대갈(畜盈待竭) 넘침으로 고갈됨을 기다린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2/15 [01:21]

 

 

‘위공병법(衛公兵法)’ ‘장무병모(將務兵謀)’에 보면, 적장이 꾀가 많으면 기회가 있더라도 쉽사리 움직이지 말고 내 쪽의 정예병과 힘을 한껏 비축해두면서 적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잡아 작전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내 쪽의 정예병과 힘을 한껏, 비축해두었다가 적이 지치기를 기다린다.’는 대목이 바로 ‘축영대갈’에 대한 풀이다. 이 책략은 적장이 지략이 뛰어나고 부하들을 잘 단속하고 있어 쉽사리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채택하는 것이다.

 

‘자치통감‧권41’ ‘한기(韓紀)‘에 보면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다.

 

29년, 봉기군의 우두머리 소무(蘇茂)와 주건(周建)이 한의 장수 왕패(王覇)가 있는 영루 가까이 와서 도전했다. 그러나 왕패는 도전에 응하지 않고 영내에서 잔치와 오락을 베풀면서 병사들을 위로했다. 부하들이 싸우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왕패는 거부했다.

 

소무의 군대는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식량이 모자랄 것이므로, 영루를 굳게 닫고 병사를 쉬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저들의 사기가 점점 떨어져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리라는 것이 왕패의 생각이었다. 소무와 주건은 싸움을 걸어도 받아주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물러갔다.(‘이수대강’ 참조)

 

동한 초기 방맹(龐萌)은 3만 군사를 이끌고 도성(桃城.-지금의 산동성 영양현)을 급히 포위했다. 유수(후한 광무제)는 몸소 날랜 기병 2천과 보병 수십만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 도성에서 60리가량 떨어진 임성(任城.-지금의 산동성 제녕시)에 주둔했다. 방맹이 달려와 도전했으나 유수는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싸우자고 했으나, 유수는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힘을 기르게 했다. 적의 예봉은 점차 무디어져 갔다. 유수는 오한(吳漢) 등의 부대를 임성으로 이동하게 했다. 방맹이 20일 동안 성을 공격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병사들은 지쳐갔다. 오한의 부대가 도착하자 유수는 즉각 반격에 나서 방맹을 대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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