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와 전쟁범죄 청산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이종훈 기자 | 기사입력 2021/03/01 [02:23]

“식민주의와 전쟁범죄 청산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이종훈 기자 | 입력 : 2021/03/01 [02:23]

 

▲ 소녀상 위안부 

 

‘자주와 독립, 민주와 평화’의 정신으로 분연히 일어섰던 3.1운동 102주년을 맞이하여 한일관계를 성찰하는 성명이 발표됐다.

 

한일화해와 평화플랫폼이 최근 법원 판결 등을 성찰하면서 ‘식민주의와 전쟁범죄의 청산을 통해 평화와 인권을 향한 시대의 흐름에 함께 나서자’고 촉구한 것.
 
이 성명에서 한국 운영위원회는,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과 거슬러 올라가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노동자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배상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성찰하였다.

 

아울러 일본 내 조선학교(우리학교) 차별과 하버드 대학의 마크 램지어 교수의 반지성적이고, 반시대적인 논문 스캔들 등을 성찰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식민주의와 전쟁범죄의 청산을 통해 평화와 인권을 향한 시대의 흐름에 함께 나서자’고 호소하였다.

 

한편 한일플랫폼은 지난해 7월 2일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와 종단은 한일 간의 엄중한 현실 앞에 위기가 새로운 기회로 전환되기를 소망하면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발족하였다.

 

한일플랫폼은 한일의 화해와 평화실현을 위한 시민사회와 종단의 논의와 협력의 틀로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체(Community) 건설을 도모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요 공동 과제는 ▲한일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일본의 평화헌법 9조 수호 ▲한반도와 동북아 비핵지대화와 군축 ▲차세대 평화/인권교육 등이다.

 

이홍정 교회협 총무, 정인성 원불교 평양교구장,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맡고 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3.1 운동 102주년 성명서>

 

식민주의와 전쟁범죄의 청산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주와 독립, 민주와 평화’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섰던 3.1 운동 102주년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는 이 숭고한 3.1정신으로 작금의 한일관계를 성찰하려 합니다.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국제법이 개인의 보편적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과 반인도적인 범죄를 비롯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어떠한 국가도 처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성과와 발전을 반영함과 동시에 국가에 의해 자행되었던 전시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명백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이 판결은 여성에 대한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주권면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세계인권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피해자들은 참혹한 전쟁범죄인 성노예제를 운영했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죄와 배상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1992년 1월 8일 수요일 12시,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진 인권 회복을 향한 그들의 작은 목소리는 이제 인권과 평화의 새 세상을 열어가는 커다란 울림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가부장제의 억압 아래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제 전 세계의 인권 피해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여성인권운동가로 우리 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일본 법정에서 재판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되었던 피해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나긴 투쟁을 통해 재판청구권을 한국의 법정에서 실현해냈고, 마침내 여성인권운동가로서 그리고 온전한 시민권을 가진 역사적인 주체로 거듭난 것입니다.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 동원되었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여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한 사실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기념비적인 판결입니다. 이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승소는 이 강제노동피해자들의 승소와 더불어 어떤 나라도 그 법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국가폭력에 대한 자기성찰적 판결이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고 인류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매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진실 규명과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지금도 피해자들과 굳게 손을 맞잡고 있는 일본의 시민들과 재일조선인들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진행된 수많은 재판 투쟁과 인권 회복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승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승소판결이 피해자 스스로 얻어낸 값진 승리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실천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희망의 발걸음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피해자와 시민들의 노력은 이른바 ‘65년 체제’의 장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65년 체제는 냉전과 분단이라는 반쪽짜리 이념을 자양분 삼아 미국의 이해관계,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과 일본 자민당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형적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그동안 피해자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아 왔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식민지배와 제국주의의 침략을 청산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지팡이와 같이 기능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국의 책임과 함께, 반인도적 범죄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은 ‘65년 체제’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해석 차이를 넘어, 식민지배의 청산을 구조적으로 봉쇄했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제의 한계를 극명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양심을 향해 식민주의 청산의 길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와 기업은 오롯이 피해자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맺어진 이 결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삼권분립의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한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는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위해 스스로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일본정부 뒤에 숨어서 판결의 이행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의 광풍’은 재일조선인들을 일상적인 위협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은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을 선동하고 있으며,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학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여 헌법에 보장된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시민모임)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현실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단지 일본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애국주의를 자극하고 그것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일본 사회의 극단주의를 부추깁니다. 결국에 이 같은 상황은 일본 사회, 나아가 동아시아 각국의 평화에 대한 자생력을 갉아먹으며, 어느덧 동아시아의 평화를 직접 위협하는 요인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한편으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강화되는 듯 보이지만,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유엔의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특별보고관은 2019년 7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진정한 사죄는 불법 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잘못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보증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사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2008년 2월 13일 호주 의회에서는 1910년부터 1970년대까지 호주 정부가 선주민들에게 실시한 강제격리정책에 대해 케빈 러드 호주 총리가 선주민 대표에게 공식으로 직접 사죄하는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에는 이른바 ‘빼앗긴 세대(the Stolen Generation)’를 대표하는 선주민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식민지배와 인종주의에 대한 청산의 움직임은 호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마크 램지어 교수는 학문의 자유를 운운하며 위안부 등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를 왜곡,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학술 행위가 정의와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학자적 양심을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인권과 평화를 향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시대적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더 이상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계 시민사회가 감시자가 될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부디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와 인권을 향한 세계의 노력을 거스르는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본 총리가 피해자를 마주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공식으로 사죄, 배상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교육, 추모사업 등을 실행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일본 정부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한국 법원의 판결은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맺은 소중한 결실입니다. 식민주의는 세계 각국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이제 한일시민사회와 종단은 그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맞잡은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3.1 운동 102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정부와 기업을 향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식민주의와 전쟁범죄의 청산을 통해 평화와 인권을 향한 시대의 흐름에 함께 나서자’고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2021년 3월 1일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 한국운영위원회

 

(가나다순)
기지평화네트워크, 녹색연합,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원불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환경운동연합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