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소부쟁(地有所不爭) '다투지 말아야 할 장소'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4/12 [13:47]

지유소부쟁(地有所不爭) '다투지 말아야 할 장소'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4/12 [13:47]

 

 

‘손자병법’ ‘구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병법’에 관한 주석을 모아 놓은 책 ‘십일가주손자 十一家注孫子’에서는 이를 두고 “크게 이득이 안되는 땅을 다투어 얻었다가 잃는다면 차라리 다투지 않는 쪽이 났다”고 하였다.

 

성 하나, 작은 땅 한 곳의 득실을 따지지 말고 적의 생산 역량을 소멸시키는 데 역점을 두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총체적인 전략목표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일부 지역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617년, 당나라를 세운 고조 이연(李淵)은 수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는 잇달아 곽읍(霍邑.-지금의 산서성 곽읍)과 용문(龍門.-지금의 산서성 하진)을 점령한 후 주력을 집중하여 하동(河東)을 포위, 공격했다. 하동의 수나라 장수 굴돌통(屈突通)은 견고하게 수비했다. 이연은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때 이연은 하동을 돌아 곧장 장안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다.

 

부장 배적(裵寂)은 굴돌통의 병력이 적지 않으므로 여기를 버려두고 그냥 간다면 장안을 공략하지 못했을 경우 앞뒤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몰릴 것이라며, 먼저 하동을 돌파한 다음 전진할 것을 건의했다. 그런데 배적의 의견과는 달리 이세민(李世民.-당 태종)은 ‘허점을 틈타 쳐들어가 천하를 호령한다’는 기본 전략에 따라 높은 지붕에 올라가 병에 든 물을 쏟아붓듯 일단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것을 강조했다.

 

즉, 지금의 기세로 곧장 장안으로 쳐들어가면 장안이 공포에 떨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혜가 있어도 제때 계략을 세울 수 없게 되고 용기가 있어도 제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쉽게 공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시간만 끌다 보면 적이 차분히 수비 태세를 가다듬게 되어 더욱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연은 아들 이세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소수 병력으로 계속 하동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몸소 주력군을 이끌고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강을 건너 장안으로 치달으니 수나라 관리들이 속속 항복하고 말았다. 이연은 전광석화처럼 장안을 공략했고, 이어서 관중을 손에 넣었다. 하동의 장수 굴돌통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하고 순순히 투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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