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가 한 것처럼 한건 한건 고소할거야"

이재상 기자 | 기사입력 2021/11/10 [10:23]

"성폭력 가해자가 한 것처럼 한건 한건 고소할거야"

이재상 기자 | 입력 : 2021/11/10 [10:23]

 

대학원 지도교수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뒤 이어진 법적분쟁을 해결하려고 성폭력 전문 유명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가, 오히려 믿고 사건을 맡겼던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여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18시간 기나긴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7형사부(재판장 김선일)는 10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폭행등)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여성 A씨와 모친 외삼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9일 오전 9시부터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18시간 동안 공판을 강행한 끝에 배심원 만장일치로 나온 '무죄'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A씨는 2017년경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다니던 중 지도교수의 성적 괴롭힘과 대학 당국의 부당한 대응을 알리고 형사고소를 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은 뒤 교수 측은 오히려 A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이러한 법적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미투운동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 전문 변호사로 유명해진 이은의 변호사에게 형사사건을 맡기기 위해 찾아갔다. 형사사건을 맡기러 간 자리에서 이은의 변호사는 A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을 권유하면서 수임계약이 체결됐다.

 

A씨는 이은의 변호사에게 재판부에 의견서를 내줄 것, 그리고 증거를 제출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은의 변호사는 2019년 3월 A씨와의 통화에서 "그럴거면 수임료 절반을 돌려줄테니 민형사 다 가져가"라고 언급했다. 

 

A씨는 이은의 변호사가 제안하여 소장을 제기했던 민사소송의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변호사가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과 관련해 사건을 계속 맡아주길 바란다는 의사를 가지고 이은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은의 변호사 사무실에 사무장은 A씨에게 '내용증명'을 보여주며 "A씨의 민사사건에서 사임을 하고, 민사착수금의 절반을 돌려주겠다"는 내용을 받게 되었다. 

 

변호사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놀란 A씨는 착수금 반환과 관련하여 협의하기 위하여 2019년 4월 2일 자신의 엄마, 외삼촌, 그리고 1급 시각장애인이었던 교회 선교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이은의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은 같은 날 10시 29분경 도착한 A씨의 일행을 1분여도 되지 않은 10시 30분경 경찰에 신고했다. 사무장은 국민참여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이은의 변호사가 다시 찾아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경찰에 신고하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기억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A씨 일행은 이은의 변호사를 만나지 못하도록 사무장이 제지하자 실랑이를 벌였고, 9분정도만에 경찰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경찰이 A씨 일행에게 복도로 나가달라고 요청하자 A씨 일행은 순수하게 경찰의 지시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약 15분 가량의 시간동안 벌어진 이날의 일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은의 변호사는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의를 하던 성폭력 피해자 A씨 일행을 공동폭행,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이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 일행 4명 모두를 공동 피고인으로 기소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시각장애1급과 청각장애를 가진 A씨 일행이 선교사를 포함하여 변호사의 사무실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몸을 밀쳤다며 약 1분여간의 상황만이 담겨 있었다.

 

A씨 사건은 법무법인 지평(곽경란·최정규·이혜온), 덕수(정민영·이대호·황준협), 이공(김선휴)의 변호인단이 수임료 없이 공익사건으로 맡았다.

 

이날 법정에는 MBC 피디수첩의 김 모 피디가 A씨 측의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김 모 피디는 "이은의 변호사가 A씨와 관련되어 보내온 메시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며 "B(지도교수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처럼 한건 한건 (A씨를) 고소를 하겠다" "ㅇㅇ대학교(A씨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소송 상대방)측에 A씨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한 사실이 있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A씨측 변호인단은 "자신의 의뢰인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오히려 역고소를 당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은의 변호사가 가해자처럼 의뢰인인 A씨를 한건 한건 고소하겠다는 내용, 사건 상대방에게 A씨에 대한 불리한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 전문 변호사의 입에서 설사 농담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 측은 변호사 사무실 방문이 수임료 반환을 독촉하기 위한 것이었고 폭행이나 업무방해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 측은 폭행과 주거침입, 업무방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며 A씨 일행에게 '유죄'를 선고해달라며 A씨에게 벌금 150만원, 다른 일행들에게도 각각 120만원에서 150만원씩 구형했다.

 

이은의 변호사도 법정에 출석해 "변호사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자신은 영세한 작은 사무실의 개업변호사에 불과하다. 검찰청이나 법원은 입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보호를 받지만 변호사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없어 이번 사건 이후로 직원을 채용할때 체격부터 보게 되었다"며 "변호사를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며 반박했다. 

 

법률닷컴 이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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