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와 관련한 항소심 판결을 두고 시민사회와 법조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한 판결”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에 나섰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3일 ‘아리셀 참사 2심 판결의 법리적 한계를 짚다’를 주제로 판결비평 토론회를 열고, 항소심 재판부의 법리 해석과 양형 판단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6월 24일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리튬 1차전지 연쇄 폭발 사고로 노동자 23명이 숨졌다. 1심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수준인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지난 4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파견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유족과의 합의 등을 이유로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4년,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손익찬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2심 판결은 안전보건규칙과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손 변호사는 특히 공장 3동 2층에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다고 본 재판부 판단에 대해 “비상구를 층마다 설치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건물 전체에 비상구 하나만 있어도 의무를 다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23명 전원과 합의했다”는 점을 주요 감경 사유로 삼은 데 대해 “합의 과정의 강박성과 기만 가능성에 대한 심리를 외면했다”며 “감형을 전제로 사실관계를 끼워 맞춘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장진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재판부가 유추해석 금지 원칙을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장 위원은 “비상구가 실제 대피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질적 판단이 배제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상 인과관계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과 현장 안전관리 실패, 중대재해 발생이라는 구조 속에서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도 항소심 판결에 대한 우려를 이어갔다.
김용균재단 권미정 활동가는 “소방당국이 이미 사고 두 달 전 해당 공장을 ‘다수 인명피해 우려 지역’으로 지목했음에도 재판부는 급속한 화재 확산을 오히려 감형 사유처럼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신하나 변호사(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법률지원단 단장)는 희생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사측이 외국인 유족의 취약성을 이용해 구조적 압박 속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합의를 감형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위험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라는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미국 OSHA와 독일·일본 건축 기준 등 해외 주요국은 모두 각 층 단위의 피난 가능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항소심 재판부 해석은 국제 기준에도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법원이 노동자 사망을 기업 범죄가 아닌 기업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당수가 집행유예에 그치는 현실 속에서 이번 판결도 구조적 불처벌 관행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항소심의 법리적 오류를 바로잡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재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토론회에 앞서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인 고(故) 엄정정 씨의 어머니 이순희 씨도 “재판부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엄중한 대법원 판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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