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 경력을 이유로 강제 징집돼 이른바 ‘녹화사업’에 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해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강제 입영된 사실이 확인돼 국가 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조명되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재판장 김형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자 1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 정도에 따라 1인당 3천만 원에서 최대 6천500만 원까지 위자료를 인정했다.
가장 많은 배상액을 인정받은 A씨는 1982년 대학에 입학한 뒤 이듬해 학내 시위 홍보물을 부착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후 강제징집됐다. 당시 A씨의 나이는 만 18세로 미성년자였다.
A씨는 군 복무 중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돼 지속적인 감시와 사상 검증 대상이 됐다. 특수학적변동자는 학생운동 경력을 이유로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는 이들을 A~D 등급으로 분류해 별도 관리하며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조사 결과 보안사령부는 A씨에 대한 기본카드와 동향관찰·선도결과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군 복무 중 언행과 생활 전반을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소송 원고들 가운데는 1971년 박정희 정권 시절 대학 내 군사교육 강화에 반대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교련 철폐 운동’을 주도하다 강제징집된 이들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권력을 남용한 직무상 불법행위로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관여한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밝혔다.
앞서 2022년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0~1980년대 군사정권이 자행한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선도업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군부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들을 체포하거나 구속한 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입영시켰다. 이후 ‘좌경 사상으로 붉게 물든 학생을 푸르게 순화한다’는 명분 아래 녹화사업을 실시하며 사상 전향을 강요했고, 일부는 학원과 종교계 등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는 프락치 활동에까지 동원했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신체의 자유, 자기결정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총체적으로 유린한 국가폭력 사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군사정권 시절 자행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위법성을 다시 한번 사법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향후 유사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청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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