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프레젠테이션(PT)을 마친 다음 날 뇌출혈로 숨진 근로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PT 준비와 발표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장기간 이어진 기저질환과 개인적 위험요인에 있다고 봤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호성호)는 사망한 근로자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엔지니어링 업체에서 건설 용역 및 감리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23년 11월 용역 수주를 위한 PT를 임원진 앞에서 진행하던 중 두통과 식은땀 증상을 보였다. 발표를 마친 뒤 몸 상태가 악화돼 숙소로 돌아갔으며,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비외상성 뇌실질내출혈로 확인됐다.
유족은 감리용역 유찰과 대기근무, 임금 삭감 등으로 심리적 압박이 심했던 상황에서 PT 준비와 발표 과정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사망을 초래했다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유족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사망하기 전 1주일 동안의 근무시간은 40시간 3분으로, 사망 전 2주부터 12주까지의 주 평균 근무시간인 39시간 37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입찰 준비와 PT 발표는 A씨가 수년간 수행해 온 주된 업무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돌발적이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업무환경 변화 또는 특별한 업무상 사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PT 준비 과정에서 상당한 긴장과 심리적 부담이 있었던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통상적인 업무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평가할 만한 객관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10년 이상 당뇨병을 앓았고, 3년간 경동맥 폐쇄 및 협착으로 치료를 받아온 점, 30년간 하루 한 갑씩 흡연한 점, 부검 결과 혈당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심장동맥경화가 확인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재판부는 "고혈압과 당뇨병, 장기간의 흡연은 뇌출혈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상병은 업무상 스트레스보다 장기간 지속된 당뇨병, 고혈압, 흡연 등 개인적 소인으로 혈관이 약화되고 퇴행성 변화가 진행된 결과 발병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업무 중 중요한 발표를 수행한 사실만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업무 부담의 정도와 기존 질환,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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